
정말 발이 넓은 사람이 있었다. 모임만 10여 개를 나가고 '카톡' 창에는 항상 불이 났다. 외로울 틈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만나는 사람은 많은데 진짜 친구라고 부를 만한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다"는 말을 해왔다. 실은 외롭다고 했다.
반면 나는 좁은 인간관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별로 외롭지 않은 편이다. 언제부터 외롭지 않게 된 걸까. 분명 어렸을 때는 외롭다고 느낀 적이 자주 있었던 것 같은데. 어느덧 내 주변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끝까지 내 곁을 지켜줄 거라고 생각되는 친구들이 서넛 생겼다. 이 친구들 덕에 삶이 어떻게 되어도 살아낼 수 있을 거라는 안정감이 생겼다. 모든 일이 다 잘못되더라도 내게는 여전히 좋은 친구들이 있을 것이다. 세상의 반을 가진 듯한 느낌이다. '내가 최고야!' 같은 자신감은 아니지만 쓰러져 누워있지만은 않을 수 있는 단단함을 갖게 된 것 같다.
브랜든 클리포드 아리조나주립대 심리학과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나처럼 쑥스러움이 많고 자신감이 없는 사람들에게 소중한 친구의 존재는 더 큰 빛을 발한다.
연구자들은 519명의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평소 얼마나 쑥스러움이 많고 사람들 앞에 서면 긴장하게 되는지, 자신이 그럭저럭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지, 마지막으로 절친이나 연인이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얼마나 진심으로 나를 걱정해주는지 등에 대해 물었다.
그 결과 우선 쑥스러움이 별로 없는 사람들은 소중한 사람과의 관계가 자존감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 반면 평소 자신감이 부족하고 쑥스럼이 많은 사람들은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아껴주는 사람이 있다고 여길수록 자존감이 높고 그렇지 않을수록 자존감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자신감이 부족한 사람들에게는 소중한 친구나 연인의 존재가 자아관 형성에 더 큰 영향을 미쳤다는 뜻이다. 보통 자신감이 부족할수록 자존감도 떨어지고 우울한 생각을 많이 하는 편이지만, 똑같이 자신감이 부족해도 사랑받고 있다고 느끼는 사람들에게서는 이러한 현상이 덜 나타났다. 하지만 부모와의 관계가 좋은 것은 자존감에 큰 도움이 되지 않았고, ‘친구’ 또는 ‘연인’과의 관계가 더 중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비슷한 결과로, 이사를 자주 다녀서 오래 사귄 친구가 없을 때, 외향적인 사람들은 괜찮지만 내향적인 사람들은 수명이 단축될 수 있다는 연구가 있다(Oishi & Schimmack, 2010).
사회적 상황을 기피하는 사람들은 사람을 만나는 게 별로 중요하지 않은가보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정반대다. 사람이 어려운 사람일수록 한두 명이라도 더 절친을 만들 필요가 있다. 이들의 존재가 삶을 지탱하는 기둥이 된다.
소중한 사람이 많을 필요는 없다. 적어도 외로움과 자존감 측면에서는 관계의 양보다 질이 중요하다. 발이 넓든 좁든, 좁다면 더더욱 단 한 명이라도 변치 않을 우정을 만들어 보자.
참고자료
-Clifford, B. N., & Nelson, L. J. (2019). Somebody to Lean on: The Moderating Effect of Relationships on Links Between Social Withdrawal and Self-Worth. Journal of Relationships Research, 10, 1-10.
-Oishi, S., & Schimmack, U. (2010). Residential mobility, well-being, and mortality.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98, 980-994.
※필자소개
박진영 《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에게》를 썼다. 삶에 도움이 되는 심리학 연구를 알기 쉽고 공감 가게 풀어낸 책을 통해 독자들과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 온라인에서 지뇽뇽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에서 자기 자신에게 친절해지는 법과 겸손, 마음 챙김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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