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이른바 무개념 주차 참교육 인증 글들이 자주 눈에 띄는데요. 무개념 주차 참교육은 주차면 2개를 차지하고 주차를 하는 등 다른 차량의 주차를 방해한 얌체 운전자들에게 초근접 주차등으로 불이익을 주는 건데요.
이번 사연은 이렇습니다. 아파트 주차장에서 주차선을 넘어 주차한 레인지로버 차량을 응징하기 위해 볼보 차량이 운전석에 바싹 근접주차 해두죠. 반대편 조수석은 여러대의 오토바이가 바짝 붙여 세워져 있습니다. 운전석은 물론 조수석 쪽으로도 차량에 탑승할 수 없는 상황인데요.
물론 먼저 잘못한 건 주차선을 넘어 차를 세운 레인지로버 차주입니다. 사연을 보고 많은 분들이 통쾌해 하셨죠. 하지만 이런 경우, 응징에 나선 볼보 차주도 법적 책임을 지게 될 수 있다는데요. 네이버법률이 알아봤습니다.
◇아파트 주차장 무개념 주차의 법적 책임
일단 주차선을 넘어 주차한 레인지로버 차량에 별도로 법적인 대응을 하기는 어렵습니다. 아파트 주차장은 사유지여서 도로교통법 적용이 어렵죠. 과태료 부과 등의 행정 조치도 불가능해서 주민간 에티켓에 기댈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참교육 주차는 앞서 다른 사례로 한번 다룬 적이 있는데요. 주차선을 넘어 주차한 아우디 차량에 스포티지 차량이 바짝 붙어 주차한 경우였습니다. 당시 스포티지 차량은 주차칸 안에 정상 주차했고 아우디 차주가 조수석 쪽 문을 이용해 차량에 탑승할 수 있었던 만큼 아우디 차주가 참교육에 나선 스포티지 차주를 상대로 법적 문제를 제기하기 어려웠죠.
그런데 이번 사례는 사실상 레인지로버 차주가 차량에 탑승하기 힘든 상황으로 보이는데요. 사진으로는 트렁크 뒷편 모습을 확인하기 어려운데요. 궁여지책으로 트렁크 문을 열고 차량에 오른다면 모를까 운전석이나 조수석쪽 문을 이용해 차량에 탑승하긴 어려워 보입니다.
특히 볼보 차량도 주차선을 넘어 주차했는데요. 무개념 주차를 한 차주를 혼내주가 위한 목적이라고 해도 결과적으로 주차 에티켓을 어긴 건 마찬가지입니다.
볼보 차주가 고의로 운전석 문을 가로막아 레인지로버 차량을 이용할 수 없게 했다고 인정될 경우, 업무방해 혐의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비슷한 판례가 있는데요. 다행히 대법원에서 결과가 뒤집혔지만 앞선 하급심에선 업무방해 혐의 유죄 판단이 내려졌습니다.
A씨는 2012년 10월 대전의 한 건물 지하 주차장에서 마티즈 차량이 무단주차했다는 이유로 저녁 8시부터 다음날 오전 1시36분까지 5시간 36분간 차량 앞 범퍼에 쇠사슬을 매달아 손수레를 묶어둡니다.
결국 A씨는 업무방해 혐의로 재판에 넘겨지는데요. 하급심은 A씨의 업무방해 혐의를 인정하지만 대법원이 원심 판결을 뒤집고, 업무방해 혐의를 무죄 판단합니다. (대법원 2017. 11. 9., 선고, 2014도3270, 판결)
대법원은 마티즈 차주가 개인적 용무를 보기 위해 주차한 일반 가정주부였으며 마티즈 차량이 업무용 차량이 아닌 자가용으로 등록돼 있다는 점에서 업무상 주차가 아니라고 봤습니다. 만약 마티즈 차량이 업무용으로 사용되는 차량이었다면 대법원 역시 하급심 판단처럼 업무방해죄를 인정했을 수도 있습니다.
지금까지 알려진 것만으로 본다면 이번 레인지로버 참교육 역시 업무방해죄가 인정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다만 레인지로버 차주가 참교육 당시 차량 운행이 업무상 반드시 필요했다는 점을 입증해낸다면 판단이 달라질 수는 있습니다.
◇'일시 이용 불가능' 재물손괴 가능할까
볼보 차량이 레인지로버 차량에 흠집을 내거나 접촉사고를 내진 않은 상황으로 보입니다. 다만 운전석에서 탑승이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이며, 이 같은 행위에 고의도 있어 보입니다. 일시적으로 차량 이용에 불편을 끼친 경우인데요. 재물손괴 혐의를 따져보면 어떻게 될까요?
일단 대법원은 재물손괴에 대해 "타인의 재물을 손괴 또는 은닉하거나 기타의 방법으로 그 효용을 해하는 경우에 성립하는바, 여기에서 재물의 효용을 해한다고 함은 사실상으로나 감정상으로 그 재물을 본래의 사용 목적에 제공할 수 없게 하는 상태로 만드는 것을 말하며, 일시적으로 그 재물을 이용할 수 없는 상태로 만드는 것도 여기에 포함된다"고 했습니다. (대법원 2007. 6. 28. 선고 2007도2590 판결 참조)
여기에 '일시적으로 그 재물을 이용할 수 없는 상태'가 쟁점이 될 수 있습니다. 흔히 재물손괴에 대해 떠올리면 외관상 훼손 정도를 일으킨 범죄로 알고 있지만 대법원은 재물손괴를 좀 더 폭넓게 인정하고 있는 셈인데요.
실제로 외부에 있던 광고판을 창고에 그대로 옮겼다가 대법원이 재물손괴 혐의를 인정한 판례가 있습니다. 광고판이 변형되거나 훼손되지 않았고, 원형 그대로 옮겨놓은 경우인데도 재물손괴 혐의가 인정됐죠. 앞선 판결에선 혐의가 인정되지 않았지만 대법원은 원심 판결을 뒤집고 다음과 같이 판단했습니다.
"비록 물질적인 형태의 변경이나 멸실, 감손을 초래하지 않은 채 그대로 옮겼다고 하더라도, 이 사건 각 광고판은 그 본래적 역할을 할 수 없는 상태로 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므로 앞서 본 법리에 비추어 보면, 피고인의 위와 같은 행위는 형법 제366조 재물손괴죄에서의 재물의 효용을 해하는 행위에 해당한다."(대법원 2018. 7. 24. 선고 2017도18807 판결)
이번 사건의 경우, 4명의 변호사들에게 문의한 결과 변호사들마다 견해가 엇갈렸는데요. 오토바이를 치우고 레인지로버 보조석으로조차 탑승이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이라던가 좀 더 구체적으로 사방이 막혀 있을 정도여서 차주가 차량을 이용하고 싶은데도 차량이 움직일 수 없다면 '일시적으로 이용할 수 없는 상태'로 볼 수 있는 만큼 재물손괴 혐의 적용도 가능하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물론 이 같은 무개념 주차 문제는 법리적인 다툼보다는 서로를 배려하는 시민의식으로 풀어갈 문제인데요. 내가 편리한 만큼 누군가가 불편할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글 : 법률N미디어 이창명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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