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박진영의 사회심리학] 현실적인 인생관이 진정한 자존감을 만든다

그리움 한줌 2020. 6. 30. 13:24

 

게티이미지뱅크 젝종

자존감이 중요하다는 이야기가 많다. ‘자존감을 높이는 법’에 대한 관심 또한 많다. 하지만 우리는 자존감에 대해서 잘 알고 있을까? 


심리학에서 자존감(self-esteem)은 말 그대로 내가 나를 존중하는 느낌이다. 시험 성적 같은 객관적인 평가가 아닌 내가 나에게 내리는 ‘주관적’ 평가이다[1]. 또한 시험처럼 나의 특정 능력을 평가하기보다 나라는 사람 ‘전반’이 괜찮은 인간이거나 그렇지 않은 거 같다고 하는 두루뭉술한 판단이다. 그러다보니 심리학자들이 사람들의 자존감을 측정할 때 쓰는 문항들도 ‘나는 내가 전반적으로 괜찮은, 가치있는 사람인 것 같다’는 식의 두루뭉술한 것들이다. 자존감을 다른 말로 ‘긍정적 자기지각(positive self-regard)’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자기 자신을 대체로 긍정적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뜻이다. 


보통 사람들이 자신감이라고 하는 것은 심리학에서 말하는 자기효능감(self-efficacy)에 가깝다. 나라는 사람에 대한 전반적인 평가인 자존감과 달리 자기효능감은 보통 자신의 ‘능력’적 측면에 대한 평가인 경우가 많다. 어떤 일을 내가 나의 능력으로 할 수 있는가, 아니면 그렇지 않은가에 대한 판단이다. 

 

자존감은 원인이기보다 결과 


일반적으로 자존감이 높은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대체로 행복하고 인간관계를 잘꾸려나가는 등의 모습을 보인다. 따라서 사람들은 자존감을 높이면 삶이 나아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안타까운 점은 자존감만 높인다고 해서, 즉 스스로를 정말 멋지고 굉장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된다고 해서 삶이 나아지는 일은 잘 일어나지 않는다. 미국 듀크대 심리학자 마크 리어리(Mark Leary) 교수에 따르면 자존감은 괜찮은 삶의 ‘원인’이라기 보다 이미 괜찮고 행복한 삶의 ‘결과’에 가깝기 때문이다. 로이 바우마이스터 등 학자들의 연구 결과 자존감 향상을 통해 사람들의 성과를 향상시키고 문제행동이나 범죄를 없애려는 오랜 시도들은 처참히 실패했음이 드러나기도 했다. 


스스로를 멋진 사람이라고 생각한다고 해서 정말 멋진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며, 마음에 썩 들지 않는 삶을 살아가면서 “나는 멋진 사람이다. 나는 사랑받을만한 사람이다. 나는 나를 사랑한다”고 외친다고 해서 나아지는 것은 별로 없다는 것이다. 


자존감을 향상시키기 위한 주문을 외울수록 되려 자존감이 낮아지고 기분이 나빠진다는 연구결과도 있었다. 자신의 삶이 만족스럽지 않은 상태에서 어떻게든 억지로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할수록 현실과의 괴리만 크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렇게 이미 만족스러운 삶과 양질의 인간관계를 통해 높은 자존감을 형성하고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 자존감 향상만을 추구하는 것은 다르며, 후자의 경우 되려 역효과를 내기도 해서 학자들은 높은 자존감을 ‘추구’하는 것에는 많은 부작용이 따른다고 이야기한다. 

 

현실적인 인생관 갖기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높은 자존감에의 추구를 관두는 것이다. 덮어두고 자신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려고 애쓰거나 나는 멋지고 특별하고 사랑스러운 사람이라는 비현실적인 자아관을 형성하려 애쓰기보다 멋지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 사랑받는 것도 당연한 게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또한 그 누구도 완벽해질 수 없으며 인간은 누구나 나름의 약점과 고통 속에서 살아간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한계가 많은 인간으로서 나나 내 주위 사람들 모두가 지금 이 정도로 살아가는 것도 결코 쉽지 않은 대단한 일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또한 비교적 정확한 현실지각, 겸손한 기준을 갖는 것이다. 사람들에게 어떤 일에서 100명 중 10명만 성공할 수 있다거나 5명 중 한 명이 암에 걸린다는 정보를 주고 ‘타인’의 실패 확률과 암에 걸릴 확률을 물어보면 다수가 주어진 확률 만큼을 기대한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남들은 얼마든지 실패하고 건강을 잃을 수 있지만 나만큼은 절대 실패하거나 건강을 잃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오만함을 보인다. 왠지 모르지만 온 우주가 나만큼은 특별대우를 해주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자신의 삶이 좋은 일들로 가득한 것이 ‘당연’하다는 비현실적이고 높은 기준을 가지고 있을수록 일이 조금이라도 틀어지면 쉽게 좌절하고 세상과 신을 원망하게 된다는 연구 결과들이 있었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세상과 신이 나에게 큰 빚을 진 것도 아닌데 유독 나만 편애할 이유가 있을까? 


심리학자 크리스틴 네프의 연구에 의하면 인간으로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부족함을 받아들이고 삶과 자기 자신에게 겸손한 기대를 할 줄 아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자기비하가 덜 하고 자존감은 높지만 나르시시즘(지나친 자기애, 자신은 대단한 사람이므로 특별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오만함과 관련된 특성)은 높지 않은 ‘건강한’ 또는 ‘진정한’ 자존감을 보였다. 


또한 실패를 겪은 사람들에게 기존의 자존감 처치(나는 멋진 사람이야)를 하거나 너그러움 처치(인간은 누구나 실패할 수 있고 나 역시 그렇다. 항상 잘 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그러지 않아도 괜찮다.)를 했을 때, 기존의 자존감 처치를 한 사람들은 자신의 실패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거나 자신이 못 한게 아니라 상황이 나빴다는 둥 책임을 회피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너그러움 처치를 한 사람들은 자신의 실패 사실을 잘 받아들이는 동시에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였으며 자신이 부족한 부분에 있어 더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 또한 더 많이 보였다는 연구 결과가 있었다. 어느 쪽이 더 장기적으로 좋은 결과를 내겠는가?

 

진정한 자존감을 얻기 위해 자존감을 추구하지 말아야 한다니 역설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건강한 자존감은 스스로를 높고 반짝이게 포장하기보다 인정하기 싫은 자신 또는 타인의 한계와 약점을 포용하는 너그러움으로부터 시작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참고자료 
- Leary, M. R., & MacDonald, G. (2003). Individual differences in trait self-esteem: A theoretical integration. In M. Leary & J. Tangney (Eds.), Handbook of self and identity (pp. 401– 418). New York: Guilford Press.
2Baumeister, R. F., Campbell, J. D., Krueger, J. I., & Vohs, K. D. (2003). Does high self-esteem cause better performance, interpersonal success, happiness, or healthier lifestyles?. Psychological Science in The Public Interest, 4, 1-44.
-Wood, J. V., Elaine Perunovic, W. Q., & Lee, J. W. (2009). Positive self-statements: Power for some, peril for others. Psychological Science, 20, 860-866.
-Neff, K. (2003). Self-compassion: An alternative conceptualization of a healthy attitude toward oneself. Self and Identity, 2, 85-101.
-Leary, M. R., Tate, E. B., Adams, C. E., Batts Allen, A., & Hancock, J. (2007). Self-compassion and reactions to unpleasant self-relevant events: The implications of treating oneself kindly.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92, 887–904.

 

※필자소개

박진영  《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에게》를 썼다. 삶에 도움이 되는 심리학 연구를 알기 쉽고 공감 가게 풀어낸 책을 통해 독자들과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 온라인에서 지뇽뇽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에서 자기 자신에게 친절해지는 법과 겸손, 마음 챙김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